잔나비를 ‘레트로 밴드’라고 부르면 최정훈이 싫어할지도 모르겠다. 그의 곡이 1970~80년대 한국 록과 포크의 DNA를 품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음악이 젊은 세대에게 먹히는 이유는 복고풍 사운드 때문이 아니다.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가 20대의 앤썸이 된 건 레트로한 기타 톤 때문이 아니라, 용기 내지 못하는 마음을 그렇게 솔직하게 써낸 가사 때문이다.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이라는 제목 자체가 이미 하나의 문장이고, 누군가의 여름에 대한 정확한 묘사다.
잔나비의 진가는 스튜디오보다 공연장에서 드러난다. 세련된 프로덕션 뒤에 가려져 있던 로큰롤 밴드의 본능이 라이브에서 폭발한다. 2024년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 단독 공연이 그 증거다. 3시간 동안 어쿠스틱 발라드에서 하드 록까지 넘나들며 5만 관객과 호흡을 맞춘 그 무대는, 한국에서 밴드 음악이 이 규모의 공연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최정훈의 즉흥 MC도 빼놓을 수 없다. 준비된 대본 없이 관객과 주고받는 그의 말들은, 공연을 일회적이고 대체 불가능한 경험으로 만드는 핵심 요소다.
밴드 음악의 대중화라는 숙제
K-POP 아이돌과 힙합이 양분하는 한국 음악 시장에서 기타, 베이스, 드럼, 키보드의 전통적 밴드 편성으로 차트 상위권에 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잔나비는 그걸 해냈다. 스트리밍 차트와 음반 판매, 공연 동원력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춘 밴드. 인디 밴드의 프레임은 이미 벗어난 지 오래고, 드라마 OST부터 광고 음악까지 활동 반경도 넓어졌다.
다음 과제는 음악적 진화다. 초기 포크 록에서 출발해 사이키델릭과 프로그레시브 록 요소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잔나비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국민 밴드’라는 타이틀은 양날의 검이다. 대중적 기대에 부응하면서도 자기만의 음악적 모험을 계속할 수 있는가. 잔나비의 다음 앨범이 그 답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