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포스트펑크가 조용히 부활하고 있다. 합정, 연남동, 을지로의 작은 공연장에서 날카로운 기타 리프와 반복적인 베이스라인, 건조한 보컬이 울려 퍼진다. 실리카겔, 파란노을, SURL 같은 밴드들이 Joy Division이나 Bauhaus를 직접적으로 참조하면서도, 한국어 가사와 이 도시의 정서를 담아낸 음악을 만들고 있다. 영미권 포스트펑크 리바이벌이 2000년대 초반에 절정을 찍고 한 차례 유행을 마친 반면, 한국에서는 지금이 이 장르가 가장 활발한 시기다.
이 흐름을 추동하는 건 장르적 계보보다 정서적 필요에 가깝다. 한국의 20대가 마주한 불안 — 취업난, 집값,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 은 포스트펑크의 냉소적이고 불안한 사운드와 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밝고 에너지 넘치는 K-POP이 현실에서 너무 동떨어져 보일 때, 어둡고 날것인 포스트펑크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실리카겔의 ‘Desert Eagle’이 바이럴된 건 뛰어난 마케팅 때문이 아니라, 그 곡이 품고 있는 긴장감이 누군가의 현재와 공명했기 때문일 것이다.
인디 씬의 지형 변화
흥미로운 건 이 밴드들이 ‘인디’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실리카겔은 대형 페스티벌 메인 스테이지에 서고, 유튜브 조회수 수백만을 기록한다. 과거 한국 인디 씬이 홍대 앞이라는 지리적 경계와 소규모 팬덤 안에 머물렀던 것과 비교하면 큰 변화다. 스트리밍 플랫폼과 소셜 미디어가 장르 음악의 접근성을 높인 결과이기도 하고, MZ세대가 취향의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문화적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다만 씬이 확장되면서 고민도 생긴다. 언더그라운드의 에너지가 메이저 시장에 흡수되면서 날이 무뎌질 수 있다는 우려, 장르의 유행이 일시적 소비에 그칠 수 있다는 불안. 하지만 적어도 지금, 서울의 작은 공연장들에서 울려 퍼지는 포스트펑크 사운드에는 분명한 절박함이 있다. 그건 유행과 상관없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