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도 소울 음악의 계보가 있다. 1990년대 김건모가 뉴잭스윙을 한국 대중음악에 이식하고, 솔리드가 R&B 보컬 그룹의 문법을 정립했을 때, 한국 소울은 미국 흑인음악의 직접적 이식에 가까웠다. 바비 브라운과 보이즈 투 멘의 영향이 선명하게 들렸고, 그것은 당시 한국 대중이 원하는 사운드이기도 했다.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 34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린 건 그 시대의 취향을 정확히 읽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 소울은 좀 더 독자적인 색깔을 찾기 시작한다. 박정현과 나얼은 미국 R&B의 보컬 테크닉을 완전히 소화하면서도 한국어 가사의 정서와 결합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특히 나얼의 보컬은 마빈 게이나 스티비 원더의 영향 아래 있으면서도 한국 발라드의 감성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등장도 중요한 지점이다. 보컬 그룹이라는 형식 안에서 R&B, 소울, 재즈의 요소를 세련되게 버무린 이들의 음악은 한국 소울의 성숙을 알리는 신호였다.
2010년대 이후의 변화
진짜 전환점은 2010년대 중반에 왔다. 크러쉬, 딘, 자이언티로 대표되는 새로운 세대는 프랭크 오션, 더 위켄드, SZA 같은 동시대 미국 R&B를 실시간으로 흡수하며 한국적 R&B의 새로운 문법을 만들었다. 이전 세대가 ‘미국 소울의 한국 버전’을 만들었다면, 이 세대는 ‘한국 R&B’라는 독립적 장르 정체성을 확립했다고 볼 수 있다. 크러쉬의 ‘Beautiful’이 멜론 차트 1위를 차지한 건 소울/R&B가 한국에서도 차트 최상위권의 음악이 될 수 있다는 증거였다.
김건모에서 크러쉬까지, 30년간의 여정을 돌아보면 한국 소울은 모방에서 체화로, 체화에서 독립으로 진화해왔다. 지금의 한국 R&B에는 미국 흑인음악의 DNA가 여전히 흐르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과 감성은 분명히 한국적이다. 그 독자성이 해외에서도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한국 소울의 다음 30년이 기대된다.